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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서평, 보이지 않던 마음을 끝내 바라보는 사람들

by clarebooks 2026.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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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만 내 곁에 있었는데도 이상할 만큼 오래 남습니다. 그때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몇 년 뒤 갑자기 떠오르고, 당시에는 서운하기만 했던 행동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남기는 작고도 오래가는 흔적을 바라보는 소설집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서평, 보이지 않던 마음을 끝내 바라보는 사람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서평, 보이지 않던 마음을 끝내 바라보는 사람들

 

그런데 이 책의 관계들은 단순히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면 해결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대학에서는 학력과 고용의 위치가, 회사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이, 가족 안에서는 성별과 경제적 상황, 오랫동안 굳어진 역할이 사람 사이에 들어옵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각자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보다 조금 더 어려운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었는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몫을 누군가에게 대신 지우고 있지는 않았는가. 최은영은 일곱 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을 관계와 노동, 가족과 글쓰기의 자리까지 넓혀갑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한눈에 보기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23년 8월 7일
형식 일곱 편의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
수록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 「일 년」, 「답신」,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주요 주제 관계의 비대칭, 글쓰기, 노동, 가족, 기억,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 개별 작품의 기본 설정은 언급하지만 중요한 결말은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한 사람의 말이 빛이 되는 순간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 영문과에 편입합니다. 다른 학생보다 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한 희원에게 대학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희원은 젊은 강사를 만납니다. 희원에게 그녀는 정답을 알려주는 완벽한 스승이라기보다 자신보다 조금 앞서 비슷한 길을 걸어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글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면서 희원도 이전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희원은 강사의 한 말을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상대에게도 아픈 말을 돌려줍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호감과 존경이 있었지만 서로가 처한 현실을 완전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희원은 과거의 강사와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제야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대 역시 안정된 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앞날을 확신할 수 없는 조건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에서 최은영이 보여주는 이해는 꽤 현실적입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희원이 그때 받았던 상처가 잘못된 감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 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했지만 상처받았다는 두 사실 역시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목의 ‘희미한 빛’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에서 빛은 삶을 대신 해결해주는 거대한 구원이라기보다 앞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준 사람의 흔적에 가깝습니다. 관계가 끝나고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 보게 된 세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표제작에서 글쓰기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희원은 글을 쓰면서 자신이 무엇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안전한 거리 밖으로 밀어놓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멋있게 포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 됩니다.

용산이라는 공간이 작품에서 의미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장소가 다른 사람에게는 사회적 상처가 새겨진 공간일 수 있습니다. 한 장소를 바라보는 기억조차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일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결국 희원이 강사에게서 얻은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자신이 이전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누군가 먼저 말하고 먼저 써주었기 때문에 자신 역시 말하고 쓸 수 있다는 감각입니다. 그 정도의 작은 빛만 있어도 사람은 전에 보이지 않던 다음 걸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몫」과 「일 년」이 보여주는 관계의 거리와 보이지 않는 위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여러 작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는 ‘위치’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대학에 다녀도, 같은 회사에서 일해도, 같은 가족이어도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과 책임은 다를 수 있습니다.

「몫」은 대학 교지편집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누군가가 먼저 쓴 글에 마음이 움직여 다른 사람이 새로운 자리로 들어오고,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글은 한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동시에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회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과 실제 삶에서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는 거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 역시 언제나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작품 제목의 ‘몫’은 단순한 책임보다 더 넓은 의미로 읽힙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는 나의 몫이 있는 동시에, 내가 외면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짊어져야 했던 몫도 있습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만큼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도 자신의 몫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최은영은 ‘공감하면 타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결론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경험은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끝내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존중의 한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이 회사라는 공간으로 옮겨갑니다. 정규직 직원과 인턴이 업무를 계기로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가까워집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면서 처음에는 직급이나 고용 형태보다 사람 자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친밀함이 관계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자동으로 없애주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회사는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공간입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두 사람이 감당하는 결과의 크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까워졌다는 사실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좋은 마음만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이 차이를 여러 관계 속에서 조용히 드러냅니다.

이 부분은 실제 관계에서도 쉽게 놓치는 지점입니다. 나에게는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 상대에게는 자신의 생계나 미래가 걸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나는 거절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상대에게는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그 차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할수록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라는 기대가 생기면서 자신의 위치를 잊기 쉬워집니다. 최은영은 그 순간에 생기는 미세한 서운함과 거리감을 세심하게 포착합니다.

「답신」으로 가면 관계의 조건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가족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는 왜 어떤 사람은 쉽게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이 따라옵니다.

밖에서 바라보면 해결책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조건과 두려움, 오래된 가족 관계가 얽히면 개인의 의지만으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순간이 생깁니다. 이때 “왜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은 설명보다 심판에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은 상대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행동은 그대로 남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지워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이해와 용서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태도가 이 소설집의 관계를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부분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의미, 사라진 관계 뒤에도 남는 것

소설집 후반의 「파종」과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오래된 가족 관계와 기억이 앞쪽으로 나옵니다. 여기에서도 가족은 단순히 따뜻한 울타리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사랑과 원망,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 관계 안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파종」은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일과 남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뒤늦게 전하고 싶은 말이 생겨도 그것을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남겨진 마음에는 그리움뿐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함께 들어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씨앗과 돌봄의 이미지는 그런 기억을 생각하게 합니다. 씨앗은 심는 순간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야 무엇이 남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건넨 마음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행동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의 삶을 지탱했던 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모에게」에서는 한 사람을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로만 기억해왔던 시선이 흔들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의 행동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바라보면 그 사람에게도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오래 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엄마’, ‘언니’, ‘이모’ 같은 이름은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전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가족과 무관한 욕망과 꿈이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소설집이 말하는 ‘이해’

상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를 아름답게 고쳐 쓰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던 기억에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사정과 시간을 더해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해한 뒤에도 사랑과 원망이 함께 남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까지 읽고 나면 책의 제목이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관계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멀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이상 세상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가 내 안에 만든 변화까지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때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의 태도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반대로 과거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했던 잘못을 기억하기 때문에 다음 관계에서는 조금 더 조심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이전의 관계를 현재의 선택 안에 조금씩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책에서 희망이 크게 빛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거나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결말만이 희망은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어도 그 일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면 현재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희미한 빛’은 오히려 현실적인 표현입니다. 인생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라면 우리는 그저 그 빛을 따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모든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까지는 걸어갈 수 있다고 먼저 보여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해준 사람,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먼저 표현한 사람,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남기는 작은 흔적입니다.

그 흔적은 자신이 받은 자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빛을 받았던 사람이 다른 관계에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결이 바로 일곱 편의 작품이 서로 다른 인물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소설집으로 단단하게 묶이는 이유입니다.

마무리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다정함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전에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이 상대에게도 똑같이 주어져 있다고 쉽게 가정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동시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경계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가 대신 살아보지 않은 삶에는 모르는 부분이 남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나는 네 마음을 알아”라는 확신보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바라보려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곳에 있습니다. 말하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경험이 있고, 기록하지 않았다면 개인적인 문제로 사라졌을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그것을 읽고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몫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옳은 말을 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 삶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글쓰기의 힘과 동시에 글쓰기의 한계를 함께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최은영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을 피하지 않습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놓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픈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했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복잡함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의 힘입니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빠르게 판단하는 대신 왜 그런 관계가 만들어졌는지, 나는 그 관계 속에서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다른 인물의 마음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까지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밝은 밤》이 여러 세대를 가로지르며 오래 이어진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았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지금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관계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강의실과 직장,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개인적인 감정처럼 보였던 일이 어떻게 더 큰 사회적 조건과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소설을 좋아하는 분에게도 잘 맞지만, 사람 사이의 문제를 단순한 성격 차이보다 조금 더 넓게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특히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관계가 끝난 뒤 남는 마음, 뒤늦게 이해하게 된 사람, 그리고 지금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생각해보고 싶을 때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결국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보여주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지나쳤던 것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 전에 상대가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고,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빛을 다른 사람에게 조금 건네는 일입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해도 그 정도의 희미한 빛으로도 사람은 이전보다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핵심 내용 정리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관계와 노동, 가족과 글쓰기를 연결해 바라보는 최은영의 세 번째 소설집입니다.

✓ 가까운 관계에서도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조건이 다르면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행동에 동의하거나 용서하는 일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말하고 쓰는 행위가 보이지 않던 경험을 드러낼 수 있지만, 옳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몫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 제목의 ‘희미한 빛’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보다 누군가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남겨준 말과 태도, 기억의 흔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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